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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밥그룻 싸움이 애들 위한 배려는 없었다.
기사입력 2011-05-19 오후 4:06:00 | 최종수정 2011-05-19 오후 4:06:57

                           ▲아시안컵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4골을 터뜨린 구자철 ⓒ AFC 

어른들의 유치한 밥그릇 싸움에 애들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최근 대표팀간 중복차출을 둘러싸고 벌어진 '막장드라마'가 남긴 촌극이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당초 어린 선수들의 연령대별 대표팀 중복차출시 'A대표팀의 우선권을 인정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가 입장을 뒤집으면서 스스로 웃음거리를 자초했다. 그것도 자문기구인 기술위가 감독의 권한인 선수선발에 개입하여 주축선수들을 일괄적으로 연령대별 대표팀에 배분하며 월권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격이다.

조광래 대표팀 감독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 감독은 기술위가 대표팀 감독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길길이 뛰었지만, 조감독 역시 처음부터 연령대 대표팀과의 원할한 소통에 소홀하고 자기중심적인 행보로 일관한 것은 마찬가였다. 뒤늦게 "처음부터 주축 선수들을 올림픽팀에 양보할 생각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배가 지나간 다음에 아무리 입에 발린 소리를 해봐야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또한 기술위의 무모한 결정은 오래 가지 않아 난관에 부딪혔다. 기술위에서 올림픽팀의 핵심선수로 배정한 구자철이 소속팀 볼프스부르크의 차출 거부로 올림픽예선 출전이 불발된 것. 볼프스부르크 구단 측은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 올림픽팀 차출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A매치 차출 때만 보내주겠다'고 밝혔다. 구단 측으로서는 당연한 이야기를 한 셈이다.

무엇보다 볼프스부르크가 구자철의 차출을 거부한 근거가 공감을 얻는 이유는, 단지 규정때문만이 아니라 '선수보호'라는 명분 때문이다. 구자철의 지난 2년간 일정을 돌아보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리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K리그 제주 시절은 물론이고, 아시안게임-아시안컵에서 구자철은 팀의 중심이었고, 다시 독일 볼프스부르크 이적과 적응 등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소화해왔다.

이것은 단지 경기수와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할지라도 짧은 시간에 여러 팀과 여러 감독을 거치면서 저마다 요구하는 전술적-체력적 역할을 모두 감당하기는 것은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에는 과중한 짐이었을 것이다. 구자철의 재능과 체력이 아무리 출중하다해도 결코 무쇠로 만든 몸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구자철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한지 아직 반년이 채 되지 않았고 팀내 입지도 미약한 어린 선수다. 낯선 리그,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적응하기만도 만만치 않을 시점에서 중복 차출문제를 놓고 싫든 좋든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속팀의 입장을 거부하면서 대표팀에 뛰고싶다고 주장할 처지도 아닐뿐더러, 설사 차출을 허락받았다고 해도 A대표팀-올림픽팀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선수보호라는 개념에서 보면 오히려 한국축구보다 해외구단들이 더욱 프로폐셔널한 모습을 보여준 장면은 낯설지 않다. 볼튼의 오언 코일 감독은 시즌이 한창 중요한 시점에서 팀전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청용의 출전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혹사를 방지했다. 조광래 감독이 아시안컵 직후 얼마되지 않아 평가전에서 또다시 이청용을 차출하자 코일 감독은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박지성이 A매치 차출 때마다 부상과 컨디션 저하를 드러내는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들이 선수보호를 강조하는 것은, 한국처럼 어설픈 인정이나 의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비즈니스 논리에 입각하여 그들의 소중한 재산인 선수들을 프로폐셔널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축구는 어떠한가. 이번 선수차출과정에서도 조광래 감독과 기술위, 연령대별 대표팀들은 저마다의 사정만 내세우며 이기주의를 여과없이 드러낸 반면, 정말로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한국 축구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지난 3월 25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온드라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구자철의 사례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유한 K리그팀들에게도 교훈을 던진다. 만일 구자철이 K리그팀에 있었다고 해도 같은 상황일까. 사실 그간 한국축구는 해외무대, 특히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의 소속구단에 대해서는 저자세이면서, 정작 K리그에서는 고압적인 자세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만일 K리그 구단들이 규정에 없는 차출을 거부하거나, 일방통행식 행보에 항의하면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K리그의 집단 이기주의로 여론몰이하는 식이다. 그러나 '규정대로 하자는' 해외 구단들의 입장에서는 팀의 정당한 재산인 선수의 차출문제를 놓고 한국 대표팀의 사정 따위를 일일이 봐줘야 할 의무가 없다. 구자철의 경우가 좋은 예다.

사실 구자철 외에도 현재 대표팀에는 차출문제를 놓고 민감한 상황에 처해 있는 유망주들이 꽤 있다. 지동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전남 구단은 지동원을 차출하려면 올림픽팀과 성인대표팀 중 한 팀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K리그팀들도 이제는 중요한 선수차출에 있어서 원칙없이 오락가락하는 축구협회나 대표팀 사령탑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감히 이들을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월드컵도 올림픽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선수들의 미래다. 조광래나 홍명보는 물론이고, 축구협회나 축구의 신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유망주들의 미래를 담보로 도박을 할 권리는 없다. 구자철이나 지동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모든 유망주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고민이다. 

넷포터: 이 준 목 기자
기사제공 : k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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