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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 대구대 이태홍 감독, 1991년 포르투갈 U-20 세계 청소년대회 남북 단일팀 '코리아 주장’ 기억하시나요?…“훗날 대구대 축구부 ‘대부’로 기억되고 싶다!”
기사입력 2019-09-09 오후 6:19:00 | 최종수정 2019-09-09 오후 6:19:05

▲본지 K스포츠티비 황삼진(우측) 국장은 지난 6일 오후 7시경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건배 잔을 시작으로 대구대 이태홍(좌측) 감독과의 취중토크를 시작했다. ⓒ K스포츠티비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에 위치하고 있는 축구 명문 대구대는 올 시즌
2월 경남 통영서 열린 춘계연맹전 16강과 지난달 태백서 열린 추계연맹전을 통해 20강에 들면서 2%부족함을 나타냈다. 그런 가운데 ‘2019 대학 U리그’ 8권역 13라운드를 마친 현재 841(승점 28)로 청주대(승점 33)에 이어 2위를 질주하고 있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된 팀 체질개선, 지난해 11월 이태홍 감독 체재로 개편된 대구대의 가장 큰 화두였다. 1992년 졸업 이후 26년 만에 모교로 돌아온 이 감독의 조련 속에 훈련 강도의 효율성을 가미하며 느슨한 정신력과 내부 기강 등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간 커뮤니케이션 빈도를 높이면서 낮아진 로열티 'PRIDE' 개선 등에도 열을 냈다.

선수들과 '밀당'을 서슴지 않는 이 감독과 하혁준 코치 등의 디테일한 지도에 학년 구분 없는 무한 경쟁으로 선수단 내 안일함 타파를 통한 긴장감 조성을 입혔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팀 포맷에 대한 면역력, 내공 등 배양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가동 인원이 넉넉하지 못한 궁핍한 살림의 애로점은 상당했지만, 모교 대구대의 변화와 혁신 등을 외친 이 감독의 '뚝심'은 휘청거리던 팀의 생명줄을 새롭게 생성시킬 밑천이 되기에 충분했다.

신태용(A대표팀 감독)과 대구공고 동기인 이태홍 감독의 선수 시절 이력은 매우 화려하다. 1987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에서 신태용과 서정원(전 수원 블루윙즈 감독), 김병수(강원FC 감독) 등과 함께 대표팀을 8강에 올려놓은 이 감독은 대구대 입학 후에도 U-19 대표에 발탁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았다. 1년 선배들인 박태하(전 중국 옌벤FC 감독), 박순태(전 대구대 감독), 이헌구(과천고 감독), 동기인 조정현(경남FC 유스 총괄 감독), 1년 후배 박남열(전 전남 드레곤즈 코치) 등과 함께 대구대 축구부의 황금기를 이끌며 주가를 높였다. 특히 1991FIFA U-20 세계청소년선수권(U-20 월드컵)에서는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차는 등 '존재감'을 자랑했다.

1987년 창단된 대구대 축구부는 손종석 감독(2003년), 박순태 감독(2018)에 이어 이태홍 감독이 3대째 감독이다. 대구대는 창단과 동시에 손종석 감독이 16년간 팀을 이끌면서 전국대회 우승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며, 대구대를 축구명문으로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박태하, 조우석, 이태홍, 조정현, 이영진, 박남열, 박철, 황연석 등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을 대거 배출하며 지방대학 축구부의 퀼리티를 높이는데 절대적이었다.

다음은 이태홍 감독을 통해 알아본 대구대 축구부, 그의 선수시절과 지도자 생활, 또 학원축구와 대학축구에 관한 문제점과 이런저런 축구 이야기를 취중토크를 통해 들어본다.

6() 오후 3시 대구대학교 서문운동장을 찾았다. 때마침 ‘2019 대학 U리그’ 8권역 위덕대와 13라운드 경기가 대학 청춘들의 열정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드넓은 대구대학교 캠퍼스는 이미 초가을의 정취가 물씬 품겼다. 끝이 보이지 않은 대구대학교 캠퍼스는 인근에 위치한 영남대학교 캠퍼스와 함께 전국대학 중 가장 넓고 웅장한 모습을 자랑했다. 젊은 청춘들의 공간이라 그런지 이곳저곳에서 눈에 띈 재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삶의 생동감의 묻어났다. 홈팀 대구대 축구부를 응원하기 모여든 재학생들은 힘찬 고함소리로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를 응원을 통해 푸는 듯 한 인상을 줬다. 대구대의 승리로 마감된 이날 경기였다. 경기 후 이태홍 감독은 오늘 기자와 대담을 나눌 취중토크 장소인 인근 진량읍에 위치한 전어 회를 주메뉴로 하는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만남의 첫 건배 잔을 시작으로 이 감독과의 취중토크를 시작한다.

▲이태홍 감독은 취중토크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축구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본지 K스포츠티비에 감사하다고 먼저 전했다. ⓒ K스포츠티비

Q:
먼저 이태홍 감독의 대학 선수생활 시절의 어떠했는지 듣고 싶다. 1987년 대구대가 창단과 동시에 전국대회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두면서 위상을 알렸다.

A: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대구대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당시 재단과 학교에서 지원을 많이 해줬고, 대회에 출전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했었다. 동기, -후배 등 좋은 선수들과 같이 플레이를 했다는 자체가 의미 있었다. 1년 선배 ()태하, (이)헌구, (조)우석 형과 동기인 ()정현이 그리고 1년 후배 ()남열 등과 함께 대구대 축구부의 황금기를 이끌며 주가를 높였다. 좋은 동기들과 선-후배와 함께하면서 제 개인적인 기량도 빠르게 발전했다. 당시 우리 팀플레이가 제 머리를 활용하는 포스트 플레이를 많이 했는데 제 머리가 남아나지 않았다.(웃음)

()태하-(조)우석 선배와 ()정현이가 노력형의 선수라면 ()남열이는 타고난 선수였다. 이들의 지원에 난 편하게 플레이를 했다. 그래도 제가 깡이 좀 있었다. 지고는 못 살았다고 해야 하나... 당시 대구대는 창단한지 얼마되지 않은 햇병아리 팀이었다. 그래도 수도권 명문 팀들 못지않은 탄탄한 선수층을 확보했다. 손종석 감독님께서 선수들을 스카우트 잘하면서 나중에 많은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했다. 대학생활 중 손종석 감독님한테 욕도 참 많이 들어 먹었다. 그래도 다 추억으로 남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정말 행복했다. 대학교 시절 청소년대표 2번, 올림픽대표와 A대표까지 축구선수로서 기회를 만들어주신 모교에 늘 감사하다. 은사님이신 손종석 감독님 때문에 행복한 대학 선수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Q: 대구대를 졸업하고 1992년 대우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에 먼저 스카우트 됐다. 하지만 입단은 일화천마(현 성남FC) 유니폼을 입었는데 당시 기억으로 일화천마가 스카우트한 김정혁과 대우로얄즈가 스카우트한 영남대 신태용+이태홍 두 선수를 묶은 1:2 트레이드가 성사된 걸로 알고 있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나?

A: 당시 저도 그렇고 ()태용이도 그랬다. 축구를 그만둘까할 만큼 자존심이 상했다. 명지대 출신인 ()정혁이 형이 1년 선배였는데 당시 상당히 빠른 선수였다. 하지만 태용이와 저 역시도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를 거치면서 태극마크를 달았기에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프로축구는 선수가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말 그대로 까라면 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훗날은 보면 일화천마 유니폼을 입은 게 태용이나 나에게 프로선수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기회였다. 당시 대우로얄즈는 정해원, 이태호, 김판근, 김주성, 조덕제, 김풍주, 하석주, 박현용, 노경환, 심봉섭 선배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보유한 국가대표사단이었다. 요즘 전북현대라고 보면 된다. 아마 대우로얄즈에 입단했다면 주전 자리를 꿰차기가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화천마는 프로선수로 성장하는데 좋은 기회였다.

▲이태홍 감독은 1992년 일화천마를 통해 프로에 입단했다. 1995년 포항을 꺾고 K리그 3연패를 달성한 일화천마 선수단의 모습 ⓒ 사진 세계일보

Q:
당시 일화천마 박종환 감독이 한국축구의 대세 지도자였다. 리그 3연패를 달성했고, 이 감독도 그 안에 주인공이었다. 박종환 감독은 어떤 지도자였나? 이태홍 감독은 박종환 감독의 훈련 스타일과 잘 맞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A: 1989년 창단한 일화천마는 제가 입단한 1992년 당시 멤버가 좋았다. '신의손' 사리체프, 고정운, 김이주, 이상윤, 안익수, 이종하, 한정국, 김경범, 하성준, 조우석 등 공수 모두에서 탄탄한 스쿼드들로 구성됐다. 주전 자리를 꿰차기 쉽지 않았지만, 데뷔 첫 해 32경기에 출전하면서 2득점을 했다. 신인선수치곤 상당히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1996년까지 매 시즌 20경기 이상을 출전하면서 일화천마의 전성기와 함께했다. 1997년 부천SK 김진형과 맞트레이드 됐는데 2시즌을 더 뛰고 은퇴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7시즌 동안 통산 162경기에 출전하면서 20득점에 8도움을 기록했다. 득점과 도움을 좀 더 할 수 있었지만, 공격과 수비를 병행하면서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잃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준수한 족적을 남겼다고 본다. 박종환 감독님의 지도력은 스파르타식 훈련이었다. 선수들이 상당히 힘들어했는데 그래도 게임을 뛰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요즘 프로선수들 같으면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 감독님 스타일과 잘 맞지 않기 보다는 제가 개성이 좀 강했다. 박 감독님의 경우 파이터형 스타일의 선수들을 좋아했다.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선수라고 해야 하나. 저 역시 거칠면서 강한 유형의 선수였다. 박 감독님 스타일에 맞지 않은 거 보다 일화천마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부천SK 김진형 선수와 맞트레이드 됐고, 이후 3시즌을 더 뛰고 은퇴했다.

Q: 1997년 김진형과 맞트레이드를 통해 부천SK(현 제주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부상으로 인해 크게 활약하지 못한 뒤 1999년 은퇴했다. 이 감독의 프로선수 생활을 정리한다면.

A: 짧고 굵게 하지 않았나 싶다. 보통 우리 때는 10년 이상 프로생활을 했다. 일화천마에 입단하는 과정부터 좀 꼬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화천마를 통해 이태홍이란 선수가 팬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욕심 같아선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상도 그렇고 성장해오는 후배들과의 경쟁은 하루하루가 전투였다. 7년 동안 162경기를 뛰었으니 그래도 프로생활을 잘한 거 같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짧고 굵게 프로생활을 마감했다.

▲1991년 U-20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대회에서 남북 단일 코리아팀 주장을 맡은 이태홍(맨 왼쪽) 감독,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운동장에서 평가전에 앞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 본인제공 

Q:
이태홍 감독 하면 그래도 선수생활 중 가장 크게 주목받은 건 19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FIFA 세계 청소년대회 남북 단일 코리아팀 주장을 역임한 사실이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 훈련과정과 본선에서의 북한 선수들과의 호흡 등 어떤 분위기에서 대회를 치렀는지?

A: 1990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한국과 준우승한 북한이 단일팀 '코리아'를 이뤄 8강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은 북한과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겼다. ‘코리아는 남북 18명씩 36명을 먼저 선발해 두 팀으로 나눈 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1차 평가전, 이후 평양에서 2차 평가전을 치러 선수단을 구성했다.

코칭스태프는 감독 안세욱() 코치 남대식() 트레이너 최만희()와 문기남()으로 짜였고 선수진은 최익형, 박철, 강철, 노태경, 장현호, 이임생, 조진호, 한연철, 서동원, 이태홍(이상 남측) 김정선, 정강성, 김정만, 최영선, 윤철, 리창하, 최철, 조인철(이상 북측) 18명으로 꾸렸다. 조별리그 A조 첫 경기에서 조인철의 중거리 슛으로 결승골을 뽑아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어 8강 진출의 유리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아일랜드와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최철의 골로 1-1로 비겼다. 마지막 3차전에서 아일랜드가 아르헨티나와 2-2로 비기고 한국은 포르투갈에 0-1로 졌지만 111패, 1위로 8강에 올랐다. 코리아는 8강전에서 준우승국 브라질에 1-5로 졌지만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당시 제가 다른 선수들보다 실제나이는 1~2살 정도 많았다. 1969년생인데 호적상 제가 1971년생으로 돼 있다. 호적상 나이가 줄어져 있는 덕택을 본 것이다. 코리아팀 주장을 맡았는데 북측 선수들과 남측 선수들 간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 제가 그때도 한 덩치를 했다. 그런지 북측 선수들이 만만하게 보지 않더라. 처음에는 서로 경계도 했지만, 합숙훈련을 통해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이후 본선에 나가 승리를 통해 남측과 북측이라는 관계가 자연적으로 없어졌다8강 브라질 전에서 패배하면서 탈락했는데 지금도 당시의 기억은 생생하다. 그때 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당시 북측 트레이너였던 문기남 선생님이 남측 귀순을 통해 울산대 감독을 역임했다. 찾아뵙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축구계를 떠나 잘 지내고 계신다.

▲1991년 U-20 세계 청소년대회 조별리그 1차전 아르헨티나 전을 앞두고 심판진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이태홍 감독의 모습 ⓒ 사진 본인제공

Q: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이태홍 감독은 밑바닥부터 단계별로 착실히 지도자 수업을 쌓았다. 남해축구클럽 감독과 안양 LG 치타스(FC서울의 전신) 유소년팀 감독, 청담중(경기) 감독, 대구대 코치를 거쳐 2008년 경주대 초대 감독, 2015년 경주시민축구단 감독 등을 역임했다.

A: 주위 환경이나 여러 가지 조건은 대학교가 편하고 나은 것은 사실이다. -청소년, 성인 팀 등의 위치를 떠나서 어느 팀이든 팀을 맡고 있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 -청소년 선수들은 성장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대학선수들은 이기는 축구의 방식을 알려주고 전술, 전략적으로 잘 받아준다. 지도자로서 남다른 흥미를 느낀다. 상황에 맞게 선수들을 보필해주고 그에 맞게 성장해주면 이태홍이라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로서 인식이 쌓이면 너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Q: 부임 첫 해 춘계연맹전 16강과 추계연맹전 20강 등 2%부족함을 드러냈다. 그래도 U리그에서 실망스럽지 않은 결과물을 낳고 있다. 이른 감이 있지만, 올해를 돌아본다면.

A: 부족한 자원이지만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다. 겨울부터 준비를 착실히 했는데 전국대회에서는 아직 부족함을 드러냈다. 그래도 하혁준 코치와 분업화된 훈련을 통해 전력을 끌어 올리는데 상당한 효과를 가져왔다. 어차피 나 혼자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남들이 메워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남의 머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부족한 것을 다른 전문가를 이용해 보충한다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나. 결론적으로 따져보면 체력+기술+조직력 등을 다양하게 선수들에게 접목시킨 결과 운동장에서 전술과 기술적인 면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국가대표팀 시절 홍명보(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이태홍(우측) 감독의 모습 ⓒ 사진 본인제공 

Q:
올 시즌 대구대의 플레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공간창출을 상당히 잘했다. 특히 미드필더 지역에서 적절한 공간창출을 통해 득점력을 도왔는데, 사실 이러한 패턴의 축구는 대학축구에서 잘 통하지 않는다.

A: 축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정확한 타이밍으로 연결하느냐이다. 사실 공간 창출능력은 우리 선수들에게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다. 우리는 어릴 적에 볼을 가지고 하는 기술 훈련은 많이 하지만,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이해나 움직임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내려와서 볼을 받는 등 침투보다는 나와서 편하게 받는 움직임이 많다. 찬스가 났을 때 폭발력 있게 무섭게 공간을 침투하는 움직임이 상당히 약하다.

현역시절 박지성 선수는 체구는 왜소하지만 굉장히 부지런하고 끊어지지 않는 플레이를 했다. 끊어지지 않는 플레이를 한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아무리 스피드하고 많이 뛰는 선수라도 볼이 왔을 때 그 볼을 잡고 서서 컨트롤한다든지, 서서 동료를 찾는 플레이를 한다면 상대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국내에 그런 선수가 많은데, 볼 컨트롤이나 드리블, 스피드가 뛰어나지만 수비수들을 모아놓고 혼자 하는 플레이를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현대축구에서는 이런 축구가 통하지 않는다. 과거 박지성이의 경우는 아주 뛰어난 스피드는 아니지만 항상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계속 뛴다. 볼이 있는 자리에는 항상 박지성이가 있다는 것이다. 90분 내내 경기 화면에 잡히는 그런 선수다. 그러니까 공간도 많이 만들어내고 팀에서의 역할도 커질 수밖에 없다.

Q: 역시 유소년 시절부터 기본기를 탄탄하게 단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 방금 언급한 그런 문제들 때문에 유소년 시절 다른 무엇보다 완벽한 기본기를 연마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축구 뿐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인데 유소년 시절에 한번 배운 것은 평생 잊어먹지 않는다.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서 그 기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무의식중에서도 그 기술을 행할 정도의 완숙도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작 위급한 상황에서는 그 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당황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과 같다.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만, 실제로 외국인과 맞닥뜨리면 헬로우라는 말 한마디 하기가 어렵다. 입에 배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게 헬로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전술이해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소년 시절에 무조건 실기만 가르쳐서도 안 된다. 이 나이 또래 선수들에게 이론을 찬찬히 가르쳐주면 그 효과는 매우 뛰어나다. 전술적인 부분에 대해 한번만 제대로 설명을 해주면 금방 깨닫는 것이 이 또래 선수들이다.

한 마디로 말해 어렸을 때부터 이론적으로 잘 설명해서 이해를 시키고, 그것을 실기로 보여주면 어린 선수들은 머릿속에 입력해 자기 기술을 만들 수 있다. 이후에 기술적 훈련을 통해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태홍 감독의 지도자 생활 이력은 특별하다. 유소년부터 중등-고등-대학-성인팀까지 두루 거치는 등 각 카레텔별 모든 연령대의 선수들을 지도했다. K3 경주시민축구단 감독 당시의 모습 ⓒ K스포츠티비 

Q:
많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 선수들은 축구 선진국에 비해 전술 이해도와 창의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A: 그것은 우리나라 교육 체계 전체의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축구 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서열이 중시되고, 윗사람의 명령 하나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다보니 창의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일반 학교 교육도 창의적인 것보다는 정답이 나와 있고 그것을 따라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면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다만 유소년 축구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개선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 점에 있어서는 희망을 가져야할 것 같다.

Q: 올해 대학축구도 전국체전과 왕중왕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감됐다. 올해 대학축구의 전반적인 특징을 설명한다면.

일단 전체적으로 전력이 평준화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몇 년 전만 해도 우승권에 근접한 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팀 간 전력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이다. 다만 그 동안의 전통이나 경험 등에서 조금 차이가 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만 삐끗하게 되면 탈락하게 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전력 평준화가 되면서 앞으로는 우승팀도 여러 팀이 나올 것 같다.

Q: 성적이 좋다보면 선수들이 계속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게 되고, 체력적인 무리도 많이 따랐을 것 같은데. 특히 지난달 8월 추계연맹전을 여름 대회로 치르다보니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상당한데.

A: 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체력적인 부분은 피지컬 훈련을 통한 훈련을 많이 실시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평소의 식단이다. 평소에 어떻게 먹느냐가 체력보강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항상 선수들 식사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훈련도 장시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개인운동, 오후에 1시간 반에서 2시간 사이로 하면서 훈련 시간 내에서는 집중력을 갖고 하길 요구했다. 어쨌든 이런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체력적인 부분에 큰 부담은 없었던 것 같다.

Q: 이 감독이 생각하는 대구대 축구의 특징을 꼽는다면.

A: 어느 팀이나 다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팀이나 감독이나 분명하게 색깔을 유지해야 한다. 저 팀은 기동력이 좋다든지, 저 팀은 패싱력이 좋다든지 등등...우리 팀의 경우에는 일단 감독이 설계자 입장이다. 큰 그림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설계를 완성한 뒤 선수들을 조율하는 것인데, 각각의 특성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항상 1~2학년들을 많이 활용한다. 1년, 1년도 중요하지만 고학년 선수들이 중도에 빠져나가거나 졸업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전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미리미리 준비를 해서 어린 선수들에게 경기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 해에 어떤 선수가 있느냐에 따라서 전력의 높낮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팀 전체에 있어서는 큰 변화 없이 지속적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방침이며, 이것이 대구대가 꾸준히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들어 유명 프로선수들이 은퇴 이후 지도자 다음으로 선호하는 직업이 축구 해설위원이다. 이태홍 감독은 이미 15년전 지난 2004년 '천년의 고도' 경주서 열린 전국 화랑대기 유소년 축구대회를 통해 해설자로 입담을 자랑했다. 아마 방송분야로 계속해서 나갔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해설위원이 됐을지도 모른다. ⓒ K스포츠티비  

Q: 1999
년 은퇴 후 유소년부터 중등, 고교, 대학, 성인 팀 등 다양한 카레텔에서 지도자 경험을 했다. 오랜 기간 지도자생활로 매너리즘에 빠질 만도 한데.

A: 아마 나처럼 다양한 연령층을 지도해 본 지도자가 많이 없을 것이다. 일단 감독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성적이더라. 특히 학원축구는 성적이 감독에 대한 평가의 잣대로 볼 수 있는데, 학원축구의 현실은 이미 성적의 위치는 판가름이 나 있다. 중고등부의 경우 프로산하 유스 팀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고, 대학축구의 경우 많이 평준화는 됐지만 그래도 아직도 명문대학교가 성적을 낼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선수 스카우트싸움에서 이미 성적이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우리 학부모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지도자 생활을 하다보면 매너리즘에도 빠지고, 힘든 고비도 여럿 있다. 저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마다 큰 문제없이 슬기롭게 잘 넘긴 것 같다.

Q: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좋은 선수들이 많아야 한다. 반대로 이런 선수들이 많으면 팀웍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A: ..대학팀은 어느 팀이든 1년 팀이다. 한 해를 얼마나 빨리 준비하고, 어떤 식으로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좋은 선수들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선수들 능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성적이 더 잘 나왔다. 단합된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뛰어난 선수가 몇 명 있을 경우에는 이기적인 플레이나 서로간의 묘한 경쟁심 등이 작용해 팀웍이 흐트러질 때도 많다.

Q: 학원축구 선수 연령대의 청소년들은 여러 면에서 방황하기 쉬운 때여서 지도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다.

A: 과거 중고등부 선수들을 지도할 때는 항상 시한폭탄이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웃음) 그렇지만 이 아이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만 보면 한없이 나빠 보이는 것이고, 또 이 나이 때 한번쯤 방황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일단 사춘기 때는 아이들이 반항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선수들을 대하다보면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아이들을 접하다보면 유난히 다루기 힘든 아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대학선수들의 경우 성인선수로 보면 된다. 특별히 사생활을 지적하지 않아도 각자 알았어. 잘 한다. 오히려 잔소리하고 참견하면 역반응이 일어난다. 그래서 책임감을 부여한다. 팀 안에서 규율과 규칙을 정해 놓고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프로선수를 바라보는 연령 때이기에 자신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모르면 축구를 그만두는 게 맞다

▲화려한 선수생활 은퇴 이후 초중고대학 성인 팀을 거치는 지도자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모교 대구대 감독에 취임하면서 빠르게 팀을 성장시키고 있다. 2019 대학 U리그에 나서고 있는 대구대 선수들의 모습 ⓒ K스포츠티비

Q: 최근 들어 엘리트 축구에 대한 제재가 상당히 많다
. 공부하는 운동선수 육성의 모토아래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이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언젠가는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체육으로도 전환되고, 편안하게 축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 한다. 이겨도 다음을 생각하면 쉽게 웃을 수 없고, 지면 진대로 웃을 수 없는 것이 지금 학원축구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어찌됐든 엘리트축구의 변화는 좋은 시도인 것 같다. 고교축구의 경우 대학진학을 위해 성적을 내기위해 선수들의 피로도가 상당하다. 이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변화가 분명 필요하다. 언젠가는 이렇게 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더 제안한다면 초등학교부터 정규공부를 모두 시키고, 고교나 대학 진학 시에도 일반학생처럼 시험을 보게 해서 입학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과 같이 축구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어느 팀이든 대회에 나올 팀은 모두 나와 1부에서 경기하든, 2부에서 하든, 100팀이든 200팀이든 나와서 대회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교 3학년까지 이렇게 한다면 저변확대에도 도움이 되고, 공부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Q: 대학팀들과 달리 초중고등부의 경우 프로팀 산하 유스 팀들이 생긴 이후부터 학원팀 지도자들의 불만이나 걱정도 많다.

A: 개인적으로는 프로구단에서 유스 팀을 운영하는 건 축구발전을 위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정도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팀을 만든다면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키워나가야지 중간에 좋은 선수들을 빼가니까 학원팀 지도자들이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개인적으로 유스 팀들도 지역연고를 정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프로구단이 특정 팀의 지원을 없애고, 지역 내 모든 학원 팀들이 산하 유스 팀이 되는 것이다. 대구FC의 예를 들어보자 현재 현풍고가 산하 U-18 유스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특정 팀을 두지 않고 지역 내 청구고-대륜고-대구공고 등 모든 팀들이 대구FC의 산하 유스 팀이 되는 것이다. 이들 팀 안에서 좋은 선수가 배출되면 곧바로 대구FC로 데리고 올라가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선수들은 지역 내 대학에 우선 배정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면 밀착형 지역연고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이유로 팬들도 증가할 것이다.

Q: 최근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로 향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개인적으로는 대학 행을 원한다. 나는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앞으로를 위해서도, 축구를 그만둔 이후 생활을 위해서도 갖출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앞으로 선수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춰야 살아가기 쉬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1년만 다녀도 대학 중퇴이지만,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가면 죽을 때까지 고졸 신분이 된다. 대학 들어간 뒤 2-3학년 정도 마치고 프로에 가도 되지 않겠나. 이후 자신이 현역에서 은퇴한 뒤 필요하다 싶으면 학교를 다시 다닐 것이고, 그렇지 않다 싶으면 다니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만 그 기회의 문은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취중토크는 3시간을 훌쩍 넘겼다. 자신의 축구인생에 대해 숨김없이 진솔하게 이야기해준 이태홍 감독이다. 이 감독은 앞으로 자신의 축구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보다 대구대 축구부를 발전시키고, 또 그 안에서 훌륭한 선수를 배출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 K스포츠티비

Q:
그밖에 지도자로서 느끼는 고충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A: 과거에는 지도자 중 제일 힘든 것이 고교 감독들 이었는데, 최근에는 대학 감독들이 가장 힘들다. 무엇보다 좁아진 취업문에 늘 걱정이다. 문제는 그 모든 것들을 모두 감독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학부모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프로에 잘 보내면 감독의 능력이 뛰어난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감독이 능력이 없다고 치부한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선수 본인의 능력에 따라 프로에 진출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일반 교수들도 지도한 학생들을 모두 취업을 시키지 못한다. 결국은 자신들이 공부해서 가는 것이지. 그런데 감독이 무능해서 프로에 못가고, 감독의 무능으로 치부하는 게 우리나라 대학 스포츠의 문제점인 것 같다. 내 자식이 좀 더 열심히 해서,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취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하는 식으로 전부 부정적이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할 듯싶다.

Q: 앞으로도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A: 저는현재로선 제 모교인 대구대 축구부 감독에 만족하고 있다.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신속하게 받아들여 선수들에게 접목시키고 싶다. 프로 감독의 꿈도 있고, 기회가 오면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사람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지만 적어도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웃음) 지도자를 관두는 날까지 내 역량을 다해 선수들을 지도하겠다. 대구대 축구부 대부로 기억되는 지도자로 남고 싶다.

대구대 이태홍 감독과 취중토크 시간이 3시간을 조금 넘겼다. 그러는 동안 이 감독 지인들이 뒤늦게 합류한 뒤 전어 회를 안주로 소주 3병에 맥주 8병이 혼합된 폭탄주로 해서 마시다보디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주당인 이 감독이 이쯤해서 자리를 마무리할 리가 만무했다. “어무요! 여기 소주 1병에 맥주 2병 더 주소!” 이 감독은 행님! 이제부터 축구이야기는 고마 그만하고, 인생 살아가는 이야기나 합시더...” 그렇게 이태홍 감독 하고의 취중토크는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K스포츠티비ㅣ황 삼 진 기자] sj1210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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